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경주김씨 상촌공파 두리종중의 세거지, 두리마을을 둘러봅니다.

두리동학전체도 斗里洞壑全體圖

두리동학전체도(斗里洞壑全整體圖)
『종가실록(宗家實錄)』, 1930년

두리 항공사진

두리 항공사진(1954년)
두리 항공사진, 1954년
땅의 형세가 좁고 우묵해서, 한 골짜기에 함께 사는 종족이 수십 호에 불과한데도 담장과 지붕이 서로 이어져 거의 다 수용하지 못할 지경이다. 이 땅이 '두(斗)'로 이름을 얻은 것이 혹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地勢狹凹,宗族之同居一谷者,不過數十戶,墻屋相連,殆不能容。地之以斗得名,豈以此歟。
— 수양(睡養) 최대수(崔大洙), 「두산정기(斗山亭記)」, 1930년

두리 뒷골(후동, 後洞)의 마을은 조선후기 이 지역에 처음 정착한 김여경(金如瓊)의 후손들이 300여년 동안 대대로 세거해 온 집성촌으로, 위 항공사진에서 보다시피 1950년대까지도 이 마을에는 20채가 넘는 가옥들이 들어서 있었다. 위 「두산정기」의 언급도 골짜기 안에 가옥들이 빽빽이 들어선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후 현대에 들어 전통사회가 해체되며 현재 뒷골에는 경주김씨의 가옥은 큰집을 포함해 5채만이 전하고 있다.

두리동학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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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불러오는 중…
종택
문중땅
차종가
복골댁
작은댁
둘째댁
김학제댁
새강댁
청룡등
유적 · 기타

위 두리동학 지도는 1930년에 저술된 『종가실록』의 「두리동학전체도」 및 1916년 현남면 지적원도,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지세명기장(地稅名寄帳)』 등에 기반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지도상의 필지와 인명은 위 자료의 내용을 따랐습니다. 다만, 100여년의 시간동안 이루어진 전통사회의 해체, 토지매매 등으로 현재의 가옥 소유 및 필지 소유 관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도에는 각 지파 소유의 산비탈과 집터, 논답 등을 표기하였습니다.

주요 사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