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파

종가(宗) 큰집(대댁, 大宅)

태사공(太師公) 김인관(金仁琯)의 20세손 김여경(金如瓊)의 직계후손으로 이루어진 집안으로, 1700년대 초부터 현남면 두리 뒷골 일대에서 거주해왔다.

차종가(次宗) 사월댁(沙月宅)

김여경의 4세손 김상연(金尙演)의 차손 김상학(金商學, 김학인)이 1842년(임인년)에 분가(分戶)하면서 형성된 지파로, 택호인 '사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사월댁의 가옥은 현남면 두리 76에 있었으나, 현재는 다른 가옥이 들어서 있다.

새강집(새강宅)

김상학의 장남 김재제(金在濟)의 차남 김동건(金東建)이 분가하여 형성된 지파로, 택호인 '새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새강댁의 가옥은 두리 74에 있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신리댁(新里宅)

김상학의 장남 김재제의 4남 김동억(金東檍)의 집안이다. 택호의 '신리(新里)'는 강릉 주문진읍의 옛 명칭인 신리면(新里面)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치는 않다.

원주댁(原州宅)

김상학의 장남 김재제의 4남 김동억의 차남 김범렬(金範烈)의 집안으로, 현재까지 그 후손이 두리 동쪽에 거주하고 있다.

찰방댁(察訪宅)

김상학의 차손으로 은계도찰방(銀溪道察訪)과 도원도찰방(桃源道察訪)을 지낸 김동만(金東萬)이 분가하여 형성된 집안이다. 『지세명기장(地稅名寄帳)』에 따르면, 찰방댁의 가옥은 시변리 14에 있었다고 한다.

상방댁(上房宅)

김상학의 장손 김동식(金東植)의 3남 김수열(金秀烈)이 분가하여 형성된 지파로, 현재까지 그 후손이 두리 굴다리쪽에 거주하고 있다. 옛날에 그 조상이 상방에 거처했기에 이렇게 불렸다고 전해진다.

작은집(小宅)

김여경의 6세손 김주형(金胄衡)의 차남 김의성(金義聲)의 집안으로, 2000년대 초까지 종가 동북쪽으로 작은집의 기와집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김주형의 장남 김지성(金志聲)이 아들이 없었기에 김의성의 장남 김동영(金東永)이 김지성의 양자로써 큰집의 대를 이었다.

남녘댁(南宅)

김의성의 차남 김동규(金東奎)가 후사가 없어 김동영의 3남 김주열(金周烈)을 양자로 들였었는데, 김주열의 차남 김규대(金圭大) 어르신이 분가하여 형성된 지파이다. 남녘댁의 가옥은 현재까지 남아 있다.

방앗간웃집(방앗간웃宅)

김주열의 장남 김규석(金圭錫) 어르신의 3남 김정호(金正鎬) 어르신의 집안으로, 방앗간집 윗쪽에 있다하여 방앗간웃집이라 불렀다. 인구리에 거주하였다.

웜집(우암댁, 愚巖宅, 愚岩宅, 牛岩宅)두리(斗里), 광정리(光亭里)

김여경의 6세손 김주형의 3남 김봉성(金鳳聲)의 집안이다. 택호인 웜집의 '웜(우암)'은 지명이라고 전하며, 우암(愚巖, 牛岩)은 '웜'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웜집'이라는 택호는 구전된 이름으로, 『화수회(花樹會)』 신묘년(1951년)의 문회 기록에서 '우암댁 김홍렬(牛岩宅 金鴻烈)'이 기재되어 있어 그 계보와 함께 웜집이 우암댁임이 확정되었다.
구전에 따르면 우암댁의 가옥은 두리 73~75에 있었다고 전하는데, 1916년 현남면 지적원도에서 해당 대지가 강릉댁 김상렬(金相烈)의 소유로 되어 있어 어느 시점부터 강릉댁이 그 터에서 거주한 것으로 확인된다. 같은 지적원도에서 장남인 김홍렬의 가옥은 두리 67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는 현재 아릇댁의 소유이다. 한편, 종가에서 소장 중인 아릇댁의 장부인 『면옥댁치부(綿玉宅置付)』의 신미년(1931년) 기록에서 아릇댁(면옥댁)이 우암댁으로부터 가옥 6칸과 그 대지를 매득하였음이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우암댁이 두리 67의 가옥과 땅을 아릇댁에 매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 종가 소장의 다른 문서들에서 우암댁이 광정리에 거주한다고 기재되어 있어 두리의 가옥을 아릇댁에 판 이후에는 현북면 광정리로 나아가 살았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

강릉댁(江陵宅)

김봉성의 장남 김동호(金東枑)의 차남 김상렬의 집안이다. 강릉댁의 가옥은 2000년대 초까지 두리 75에 있었으나, 현재는 다른 사람의 가옥이 들어서 있다.

갓바우댁(입암댁?)

김봉성의 3남 김동락(金東洛)의 아들 김무열(金武烈)의 집안으로, 현재까지 갓바우댁의 가옥이 작은댁 집터 동쪽에 있다.

베메집(베메宅)

김여경의 6세손 김주형의 4남 김학성(金鶴聲)의 집안으로, 택호의 '베메'는 지명이라고 전한다.

동녘댁(東宅)

김학성의 양자 김동현(金東顯)의 장남 김봉렬(金鳳烈)의 집안으로, 현재까지 그 후손이 두리 뒷골 마을 내에 거주하고 있다.

둘째집(二宅)

김동영의 차남 김재열(金載烈)의 집안으로, 둘째의 집안이라 하여 둘째집이라 불렸다. 김동영의 장남 김종렬(金宗烈)은 후사 없이 일찍 별세하였는데, 둘째집은 김재열의 장남 김규하(金圭夏)가 김종렬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형성된 집안이다. 둘째집은 가옥이 큰집 앞 두리 64의 터에 있었으나, 현재는 밭으로 사용되고 있다.

호정댁(湖亭宅, 湖汀宅)

김재열의 3남 김규영(金圭英)의 집안으로, 호정댁의 가옥은 6.25전쟁 전까지 큰집 앞에 있었으나 전쟁 이후 강릉에 나가서 살았다고 전한다.

면옥치댁(綿玉峙宅, 綿玉宅), 아릇댁(아랫宅)

김동영의 4남 김공렬(金共烈, 金孔烈)의 집안으로, 택호의 '아릇'은 영동방언으로 '아래'를 뜻한다. 아릇댁의 가옥은 큰집의 집터 동쪽에 있으며, 그 후손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종가 소장 문서 중 『면옥댁치부』가 발견되어, 그 계보가 확인되었다. 해당 장부의 첫 장에 호주(戶主) 규철(圭哲)과 호주의 가계가 적혀 있는데, 그 가계 정보가 아릇댁과 일치하여 택호를 확정하였다. 이때 면옥치댁은 해당 집안의 택호이며, 아릇댁은 해당 집안이 거주한 집의 택호로 추정된다.

서문댁(서뭇댁, 西門宅)

김여경의 장남 김한태(金漢泰)의 차남 김수주(金洙柱)의 증손 김상하(金商河)의 양자로 들어간 김태제(金泰濟)의 집안으로, 그 외의 정보는 전하지 않는다.

복골댁(福洞宅, 福谷宅)

김한태의 4남 김영주(金英柱)의 차손 김중희(金重喜)의 집안이다. 복동댁의 가옥은 작은댁 북쪽에 있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방추댁(방추宅)

김중희의 동생 김석희(金碩喜)의 차남 김상교(金商教)의 4남 김세제(金世濟)의 집안이다. 방추댁의 가옥은 2000년대 초까지 남녘댁 북쪽에 있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그 외 계보를 알 수 없는 지파

두리종중의 지파 중, 『화수회』, 『부위록(賻慰錄)』 등의 종가 소장 문서에 그 택호가 기재되어 있지만, 그 계보를 알 수 없는 지파들이다.

주촌댁(舟村宅)두리(斗里)

남면댁(南面宅)두리(斗里)

신정댁(新亭宅, 新丁宅)두리(斗里)

은계댁(銀溪宅)두리(斗里)

말곡댁(末谷宅)두리(斗里)

신광정댁(新光亭宅, 新光丁宅)두리(斗里)

갈평댁(葛坪宅)두리(斗里)

동향댁(東香宅)두리(斗里)

부연댁(釜渊宅)두리(斗里)

주촌댁(酒村宅)두리(斗里)

남용?댁(南庸?宅)두리(斗里)

임호정댁(林湖亭宅, 臨湖亭宅)광정리(光亭里), 간성(杆城)

왕도댁(旺道宅)광정리(光亭里), 약계동(藥溪洞)

대치(대소)댁(大峙(大小)宅)왕도리(旺道里)

현남댁(縣南宅)도동리(陶洞里)

입암댁(笠巖宅)어성전리(漁城田里)

거리댁(巨里宅)간성(杆城)

이촌댁(梨村宅)미상

영동댁(永同宅)미상

구광정댁(旧光丁宅)미상

안산댁(案山宅)미상

하곡댁(荷谷宅)미상

광정댁(廣亭宅)미상

광정호정댁(廣亭湖亭宅)미상

광정우암댁(廣亭牛岩宅)미상

유댁(踰宅)미상

성전댁(城田宅)미상

월천댁(月川宅)미상

장항댁(獐項宅)미상

행정댁(杏亭宅)미상

와부댁(瓦阜宅)미상

조산댁(造山宅)미상

송전댁(松田宅)미상

셋째댁(三宅)미상

정댁(貞宅)미상

횡성댁(橫城宅)미상

견불댁(見佛宅)미상

인제댁(麟蹄宅)미상

사수댁(社首宅)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