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두리종중의 연혁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것으로, 종가와 종중의 사건 중 중요성이 높은 것들 위주로 추린 것이다.

1700년대 초

김여경(金如瓊), 현남면 두리 일대의 숲을 개척하여 창거(剏居)하다.

1804년
(순조 4)

영동지방의 대형 산불로 종가와 모든 문권이 전소되다.

1840년
(헌종 6)

김주형(金胄衡)의 상선(商船) 사업 실패로, 두리의 전답과 종가, 소나무 숲을 전당 잡히다.

1842년
(헌종 8)

김상학(金商學), 사월댁(沙月宅)으로 분가하다.

1846년
(헌종 12)

김의성(金義聲), 종가의 산비탈을 복골댁과 사월댁에 분매(分賣)하여 채무를 상환하다.

1855년
(철종 6)

후포매리 장두곡산(長斗谷山) 선영의 향화계(香火契) 문회(門會)를 개최하다.

1880년
(고종 17)

김동영(金東永), 종가를 재건하다. 성황동(城隍洞)과 포매산(浦梅山) 선영을 문중 소유로 편입하다.

1890년
(고종 27)

김동만(金東萬)과 환이(桓伊) 김덕윤(金德潤), 환이문권(桓伊文券) 사건이 일어나다.

1895년
(고종 32)

화수회(花樹會) 을미년 문회를 개최하다.

1902년
(광무 6)

김규하(金圭夏)의 승중(承重), 김재열(金載烈)이 둘째집(二宅)으로 분가하다.

1920년
(대정 9)

종중, 창리 성황동에 전사청(奠祠廳)을 건립하다.

1930년
(소화 5)

김규하, 『종가실록(宗家實錄)』을 저술하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다.

1956년

종중, 토지신에게 축문을 올리고 김여경과 김준태(金俊泰)의 묘를 개모(改摸)하다.

2005년

후포매리 포매산 선영의 일부 산소가 동해고속도로 부지로 편입되어, 김여경 처 밀양박씨 산소 등 일부 묘소를 개장하여 화장하다.

2008년

후포매리 장두곡 선영이 포매저수지 부지로 편입되어, 장두곡 선영의 산소를 모두 개장하다.